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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riter: 황선웅 (Isaac)
    황선웅 (Isaac)
  • Mar 27, 2024
  • 1 min read

바티칸 사본(Codex Vaticanus)은 현존하는 신약성경 사본 중 가장 권위있는 사본 중 하나입니다. 4세기의 것으로 추정되고 신약성경 거의 대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바티칸 사본의 히브리서 1:3 옆에는 필경사(scribe)가 추가한 것으로 보이는 경고문이 달려 있습니다. 


ἀμαθέστατε καὶ κακέ, ἄφες τὸν παλαιόν, μὴ μεταποίει

Fool and knave, leave the old reading and do not change it! 

멍청하고 나쁜놈아, 성경 본문을 바꾸지 말고 그대로 두어라! 




인쇄술이 나오기 전까지 성경은 필경사들이 손으로 옮겨 적어 만들었습니다. 필경사들의 임무는 원본(original copy)과 똑같은 사본(manuscript)을 만드는 것이었지만, 어떤 필경사들은 창의적으로 일에 접근했던 것 같습니다. 혹시 사본을 만들다가 이야기 전개에 방해가 되는 단어가 나오면 일부러 빠트리기도 하고, 혹은 이야기 진행을 더 매끄럽게 할 수 있다면 한 문장을 추가하기도 했습니다. 바티칸 사본에 달린 무서운 경고문이 나오게 된 배경입니다. 


말씀을 바꾸려는 시도는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회개라는 단어 혹은 죄라는 단어가 강단에서 실종되었습니다(저도 책임감을 느낍니다). 복이나 축복이라는 단어는 원래보다 남발되고 있습니다. 순교나 선교, 헌신도 찾아보기 힘든게 사실이지요. 사랑이란 말은 하나님께 받는 것으로만 배우지 서로 실천해야 하는 것 또 교회 밖으로 흘려보내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잘 안 들리는 것 같습니다. 


지난주 “내 말을 듣고 #그대로 하는 사람은 그 집을 바위 위에 지은 사람과 같다”라는 말씀을 전하면서 저도 마음이 찔렸습니다. 실제로 #그대로 행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은가 하는 질문 + 자기합리화도 마음에 있었고요. 그래선지 주님은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지 말씀하시면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자기 사랑을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말씀에 나온 여러가지를 다 그대로 세세하게 지킬 수는 없을지라도 하나님과 이웃,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향으로 걷기를 힘쓴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제 삶에 살아 숨쉬는 인생, 그래서 바위 위에 지어진 흔들리지 않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 Writer: 황선웅 (Isaac)
    황선웅 (Isaac)
  • Mar 27, 2024
  • 2 min read

지난 주일(1/7)부터 예배에 몇 가지 변화가 생겼습니다. 찬양 뒤에 서로를 바라보며 축복하는 시간이 생겼고 이 시간에 방문하신 분들도 함께 소개합니다. 또 설교 뒤에 봉헌하는 순서가 생겼습니다. 헌금 바구니는 돌지 않고, 예배실에 들어오면서 드린 헌금이 단으로 올라가는 상징적 순서가 추가됩니다. 혹시 어떤 분들은 그런 질문을 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왜 이 순서들이 필요한가?”



예배(실천)는 우리가 믿는 바(신학)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곳입니다. 예배 순서는 두 가지 기준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첫 째는 하나님의 은혜 베푸심과 우리의 응답으로, 수직적(vertical) 방향으로 일어나는 교환입니다. 예배의 첫 순서인 교독문(예배로 부름)은 대개 하나님의 행하신 일이나 성품에 집중합니다.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오늘 예배에 포함된 교독문에는 “구원하시는 주여”라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의 응답이 나옵니다. 이어지는 찬양이 우리의 응답입니다. 그분의 행하신 일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성품에 기대어 우리의 기도를 올려드리기도 하지요. 즉 우리를 향해 아래로 베푸시는 은혜에 우리가 찬양과 감사로 위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성가대가 있는 교회에서는 보통 성경봉독 직후에 성가대의 찬양이 옵니다. 같은 이유에서 그렇습니다. 은혜로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 감사하면서 우리의 찬양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이는 주님의 백성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This is the Word of God for the people of God)” 그리고 우리가 응답합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Thanks be to God).” 헌금은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응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은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을 담아 드리는 헌금/헌신은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함께 부르는 봉헌송의 가사를 다시 새겼으면 좋겠습니다: 


All to Jesus, I surrender. All to you, I freely give. 

I will ever love and trust you, in your presence I will live. 


예배의 두 번째 방향은 수평적 방향입니다. 우리는 위로부터 받은 위로를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달합니다. 또 세상을 향해 그 위로와 은혜를 확장합니다. 그래서 예배 중에 서로 환영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옆에 있는 분들께 인사합시다”가 그 시간이고, 미국 교회의 예배에는 Sharing of Peace 라고 해서, 돌아다니면서 악수와 인사를 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또 Prayers of the People 이라고 해서, 기도가 필요한 사람들과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이야기(기도 제목)를 나누는 시간도 있지요. 예배 후에 이어지는 친교 시간은 한국 교회가 가진 강점입니다. 음식을 준비하고 치우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긴 하지만, 위로부터 받은 위로를 옆으로 나누는 좋은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통해, 또 말씀을 받아 실천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 우리 삶에 실질적으로 살아계십니다. “은혜로다”라는 찬양이 그래서 좋습니다. “주가 계신 지성소에서, 주를 찬송함이 내 영혼에 부어주신 주의 큰 은혜로다.” 위로부터 아래로 부어주시는 은혜와 위로는 우리를 통해 또 교회 공동체를 통해 함께 예배하는 성도들에게로 또 교회의 지경을 넘어 세상으로 흘러갑니다. 우리는 위로 받아서 (옆으로) 위로 주는 사람입니다. 


올해 우리가 드리는 예배 가운데 이 두 가지 방향이 다 살아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부어지고, 우리의 기도와 소원이 올라가고, 또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지길 기도합니다. 

  • Writer: 황선웅 (Isaac)
    황선웅 (Isaac)
  • Oct 12, 2023
  • 1 min read

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혹은 “트라우마”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보통 번역되는데 일상에서는 물리적 상처나 부상보다 오히려 마음의 상처에 관해 더 많이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직장/가정에서 들은 말, 겪은 일, 갑작스레 생긴 비극적인 일 등은 그 일이 지나가고 난 뒤에도 우리 마음에 상처를 남깁니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는 그의 책 안티프래절(Antifragile: Things that Gain from Disorder)에서 상처/스트레스에 관한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상처나 스트레스도 결국 하나의 정보라는 것이지요. 삶이 내게 주는 고통이나 어려움은 그 자체로 불행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오히려 우리 삶의 연약한 부분이 어디인지, 어떤 변화가 요구되는지 보여주는 정보입니다. 또 그 같은 부정적 측면을 통해 우리는 더 강하고 유연해지기 위한 유용한 정보를 얻기도 합니다.


PTSD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실은 PTG(Post-Traumatic Growth)라고 불리는 “외상 후 성장”입니다. 내 삶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일에 대응하는 방식이고, 그 일을 통해 우리 자신을 키우는 방식입니다. 근육을 생각해 보면 쉽습니다. 근육은 운동/자극을 통해 섬유가 찢어지고 회복되는 과정에서 커지고 강화됩니다. 운동을 하면 처음에는 알이 배기고 통증을 느끼지만 그 아픔을 통해 근육이 커지고 단단해집니다.


우리 삶에 있는 여러가지 문제를 “정보”로 인식하면 어떨까요? 그 문제는 나 자신에 대한 혹은 내 역량에 대한 어떤 정보를 제공하고 있나요? 어떻게 내 삶을 바꾸어 가야 할까요?


2023년 10월 8일 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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