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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riter: 황선웅 (Isaac)
    황선웅 (Isaac)
  • Mar 27, 2024
  • 1 min read

스턴건(stun gun)이라는 별명을 가진 김동현 선수는 UFC에 처음 진출한 한국인 파이터입니다. 코리안 좀비 정찬성 선수 이전에는 한국이 자랑하는 격투기 선수였고, 은퇴 이후에는 왕성한 방송 활동을 하고 있지요. 그런 김동현 선수에게 전국의 초등학생 중학생들이 온라인 상에서 메시지를 보낸다고 합니다. “형, 팬이에요.” “멋있어요!” 이런 메시지가 아니라, 반말로 “김동현 싸움 좀 하냐?” “나랑 계급장 떼고 한 판 붙자.” 이런 내용이라고 합니다. 



공자님도 앎이 무엇인지 묻는 제자에게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바로 앎이다.” 즉, 자기 지식의 한계를 아는 사람이 진정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얼마나 아는가를 자랑하기 바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만, 진정한 앎은 우리가 모르는 게 무엇인지 깨닫는 데서 출발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주 새신자반에서 이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데 장애물이 되는 것들 중 하나가 “악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선하시고 전능하시다면, 지금 우리 세상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왜 그냥 놔두시는 것일까요?’ ‘애초에 왜 악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 들어온 것일까요?’ 등의 질문들이지요. 다만, 우리가 쉽게 범하는 실수 한 가지가 있는데, 그 악의 문제로부터 우리를 분리하는 것입니다. 마치 ‘나는 깨끗하고 거룩한 사람으로, 개관적으로 이 세상의 악을 관찰하고 있다…’ 이런 식의 접근입니다. 우리도 그 악과 한덩어리입니다. 우리도 그 악의 원인이고 결과입니다. 따라서 악의 문제를 해결하는 첫 걸음은 우리가 먼저 은혜 앞으로 나아오는 것입니다. 죄인임을 인정하면서,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이 세상을 바꾸는 일꾼으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지난주 설교에 소개했던 드라마 로망스(2002)의 명대사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난 선생이고, 넌 학생이야.” 우리 입장에서 이 말을 다시 써 본다면 어떨까요? 글쎄요… “난 학생이고, 그쪽은 선생님이시네요.” 정도 되지 않을까요.

  • Writer: 황선웅 (Isaac)
    황선웅 (Isaac)
  • Mar 27, 2024
  • 2 min read

사순절이 어느새 저물고 있습니다. 어제 토요일(3/16)이 40일 중 28일 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신약 통독도 어느새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끝내고 바울서신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기간 상으로도 또 분량 상으로도 2/3 지점에 와 있습니다. 거의 끝에 와 있는 것은 감사하지만, 긴 여정에 지쳐 길 옆에서 잠시 쉬고 계신 분들도 보이고, 아예 경주를 포기한 분들도 계신 것 같습니다. 한 분도 포기하지 않으시도록 몇 가지 격언들을 나눕니다. 



“Most of the important things in the world have been accomplished by people who have kept on trying when there seemed to be no hope at all.” — Dale Carnegie

“이 세상의 중요한 일의 대부분은 소망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도전했던 이들이 이룬 것들이다.” — 데일 카네기


“It ain’t over till it’s over.” — Yogi Berra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 요기 베라


”Winners never quit, and quitters never win.” — Vince Lombardi 

“이기는 사람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포기하는 사람들은 절대 이기지 못한다.” — 빈스 롬바르디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이 말이 남았습니다: “포기는 배추를 셀 때나 쓰는 말이다.“ 


몇몇 교우들과 함께했던 다이어트 챌린지가 지난 월요일에 끝났습니다. 저는 운동은 많이 못 하고 끼니를 줄였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레귤러 코크는 1월 1일에 한 캔을 마시고 올해 전혀 마시지 않았습니다(부활의 주님과 다시 한 캔을 마시려 합니다). 1월 중순까지 탄산의 유혹이 심했고 그 이후로는 괜찮았었는데, 다이어트 챌린지가 끝난 이번 한 주간, 콜라를 마시고 싶은 유혹이 그 어느 때보다 강했습니다.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한 캔 정도야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포기하고자 할 때 우리는 여러 핑계를 만듭니다. 몸이 힘들다… 삶에 여러가지 스트레스 받는 일들이 겹친다… 너무 바쁘다… ‘안 그래도 힘든 데 더 나를 힘들게 하지 말자’ 하는 생각이 들 겁니다. 바로 그때가 우리의 의지를 증명할 때입니다. 한 발짝이라도 더 나아가세요. 포기하지 마시고, 계속 걸어 갑시다. 종점이 멀지 않았습니다.

  • Writer: 황선웅 (Isaac)
    황선웅 (Isaac)
  • Mar 27, 2024
  • 1 min read

3월부터 “Questions from God”이라는 설교시리즈를 시작합니다. 3/31일 부활절까지 진행합니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질문의 변질”을 체감합니다. 질문은 진리에 가까워지는 도구인데, 우리는 “Yes or no?”라고만 물으면서 원하는 답을 짜내는 수단으로만 질문을 사용합니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에 대한 질문을 품고 삽니다. ‘왜 하나님은 이 세상의 악을 그대로 두시는가?’ ‘선악과라는 것을 애초에 왜 거기 두셨는가?’ ‘내 삶에는 왜 이렇게 어려움이 많은가?’ ‘구원 받은 이후에 죄를 지으면 내 구원이 취소되는 것인가?’ 성경에도 이런 질문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나의 주님,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라고 울부짖으셨습니다. 욥은 “주님께서 손수 만드신 이 몸은 학대하고 멸시하시면서도, 악인이 세운 계획은 잘만 되게 하시니 그것이 주님께 무슨 유익이라도 됩니까?”(욥기 10:3) 라고 직설적으로 물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질문에 파묻히면서 잊는 것이 있는데,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질문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고 숨어있는 아담과 이브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주님을 부인하고 다시 물고기 낚는 어부로 돌아간 베드로에게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다메섹으로 가던 박해자 사울에게는 “왜 나를 핍박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저 같았으면 일단 뒤통수 한 대 때리고 시작했을텐데, 하나님은 먼저 부드럽게 물으십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어디에 있는지 물으시고,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여전한지 물으시고, 내 목표에만 사로잡힌 채 하나님의 뜻을 생각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으십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던지셨던 질문들을 함께 탐구해 보고자 합니다. 이 질문들을 통해 우리의 영적 위치가 어디인지, 또 지금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 더 밝히 알게되길 소망합니다. 


3/3 “네 이름이 무엇이냐?” 창세기 32장

        3/10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출애굽기 4장

        3/17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욥기 38장

        3/24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요한복음 5장

        3/31 “왜 울고 있느냐?” 요한복음 2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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