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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riter: 황선웅 (Isaac)
    황선웅 (Isaac)
  • Jun 22, 2020
  • 2 min read

Youth(중고등부)를 맡아 사역한지 3년째 되던 여름이었다. 교회 밴을 운전하고 가던 중에 학생 한 명이 물었었다. “Do you like being a pastor?” 목회하는 것이 좋은가요? 라는 간단한 질문이었지만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런 대답을 했던 기억이 난다. “힘들때도 있지만, 다양한 경험을 해 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한다. 목회자는 운전기사도 될 수 있고, 연설가, 작가, 교사, 행정가, 수리공, 가수, 사진가 역할도 겸하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상담가, 작명가, 청소부, 웹사이트 관리자, 행사 연출/진행, 보육교사, 건물 관리인, 이야기 꾼 등의 역할도 한다. 그야말로 종합 엔터테이너 역할에다 행정력도 발휘해야 하고, 본질적 기능이라 할 수 있는 영적인 기능도 수행해야 한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올해는 온라인 여름성경학교를 진행하기로 했다. 저런 옷을 아마존에서 사 입고, 기상 캐스터들이나 서는 크로마키 화면 앞에서 저런 비디오를 찍었다. 안 그래도 역할이 많은데 유튜버 역할도 목회자의 기능에 들어가는 시대가 된 셈이다 (이런 변화는 분명 어느 시점에 이미 시작되어 있었고, 코로나 사태를 이를 가속화했을 뿐이다).


모세오경을 다시 읽으면서 제사장이나 레위인들의 역할을 눈 여겨 보게 되었다. 그들의 본질적 기능은 성전에서 봉사하고 예배를 돕는 일이었다. 레위기가 말씀하는 여러 제의의 수행이라든지, 민수기가 말씀하는 성막의 이동과 관련된 그들의 역할이라든지, 제사장 신분을 가진 이들이 수행하는 본질적 영역에 해당하는 종교적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역할은 종교적 역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부정한 피부병에 대해 다루는 레위기 13장은 제사장을 마치 공중보건의처럼 취급한다. 각종 피부병의 진찰, 진단, 처방, 및 후속절차까지 모두 제사장이 담당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레위기 27장은 제사장이 서원예물의 값을 매기도록 규정한다. 세상에나. 감정사(appraiser)의 역할이다. 제사장이 값을 매겨야 하는 것들은 사람에서부터, 가축, 집, 토지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했다. 그런가하면 신명기 17장은 까다로운 소송 사건들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가도록 규정한다. 지역에서 판별하기 어려운 것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제사장과 재판관들에게 보내라고 말씀하신다.


영적인 기능은 목회의 본질이지만, 그 한 가지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처럼 들린다. 물론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과 올바른 예배를 통해 성도들을 하나님의 임재의 장에 세우는 것이 목회자의 주된 임무임에는 틀림 없지만, 영/혼/육이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사람들의 영/혼/육과 관련된 제반의 일에 관심을 갖고 수련을 게을리하지 말라는 말씀이리라. 시사에도 밝아야 하고, 경제, 정치, 문화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상황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분별하는 일, 그리고 그것을 나누는 일 또한 목회자의 임무라는 생각이 든다.


10년이나 20년 뒤에 2020 Virtual VBS Promo 영상을 다시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게될까. “흑역사"라고 생각하면서 부끄러워 할까. 아닐 것 같다. ‘2020년에는 저런 것을 하면서 재미나게 목회했었구나. 감사하다.’ 생각할 것 같다. 지금 양떼들이 당하는 고통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맞춤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 내게 주신 소명이라는 것을 다시 되새길 것 같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더욱 감사한 오늘이다.

  • Writer: 황선웅 (Isaac)
    황선웅 (Isaac)
  • May 29, 2020
  • 3 min read

갈수록 글쓰는 일이 어렵게 느껴집니다. 다른 분들의 글을 보면서 눈은 높아졌는데 제 글은 수준미달인 탓입니다. 초연결 시대가 되면서, 제가 남긴 흔적들이 인터넷 어딘가에 영원히 남는다는 사실도 제 의지를 꺾는 요인입니다. 또 글이 부족한 탓에 제가 의도했던 것과 달리 전달되거나 해석될 때 견디기 힘든 점도 있습니다. 그래도 더 쓰려 합니다. 실수하면서 성장하고, 부족함이 드러나는만큼 더 큰 은혜를 체험하는 글쓰기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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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사도는 자기가 당한 고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다고 말씀합니다 (고후 11:24). “사십에 하나 감한 매”라는 법적 관습은 신명기 25장에서 유래했습니다. 25장 1-3절은 현재 법률 용어로 말하면 과잉 처벌 금지에 관한 조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3절은 사실 사십대까지 때리는 것을 용인했다는 부분인데요. 법을 집행하면서 행여나 있을 실수에 대비해서 사십에 하나 감한 삼십구대를 태형의 최고형으로 시행했던 것 같습니다.


사형제를 여전히 시행하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사형제도 자체는 존속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시행되지 않는 나라입니다. 마지막 사형 집행이 1997년 12월이었고 현재 “실질적 사형제 폐지국"으로 분류된다고 하네요 [1]. 사형을 시행하는 나라들조차도 보다 인도적인 사형 방법에 대해서 고민합니다. 사형수가 느끼는 고통을 최소화하면서, 최대한 짧은 시간에 죽음에 이르게 하고, 신체에 남는 상처 등을 최소화하려 노력합니다. 약물 투약같은 것이 듣기에는 잔인해도 생각보다 괜찮은 형 집행 방법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상처라곤 주사 자국 하나만 남고, 약간의 마취 후 고통 없이 보내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극심한 고통을 가하는 전기 의자나, 몸에 상처를 남기는 총살이나 교수형보다 약물에 의한 사형이 더 “인도주의적"인 방법이라는 얘기입니다.


신명기 본문이 말씀하는 사십대까지 용인하는 태형도 마찬가지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비인도주의적이고 잔인한 것 같아도, 본 율법이 지향하는 바는 형량의 한계를 정하는 데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본다면 인도주의적 제도인 셈입니다. 3절 후반부는 이를 방증합니다. “... 만일 [사십대를] 넘겨 매를 지나치게 때리면 네가 네 형제를 경히 여기는 것이 될까 하노라.” 범죄자가 태형에 합당한 잘못을 저질렀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가 여전히 네 형제인 것을 기억해야 하며, 그가 저지른 범죄의 흉악한 정도가 인간으로서 그가 지닌 존엄성을 잊게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일견 현대의 독자들을 당황시킵니다. 형이 자식 없이 죽어서 형수가 과부가 되면, “형제 된 의무를 다 행해야"한다고 말씀하는데, 이는 형수와 잠자리를 가지라는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8장의 다말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유다의 장자 엘은 다말과 결혼한 뒤 자식없이 죽습니다. 둘째 아들 오난은 형수와 합방은 하지만 형제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땅에 설정합니다. 쾌락은 취하고 의무는 져버린 이 행위를 성경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했다"고 말씀합니다(창 38:10). 결국 오난도 죽고, 다말은 자구책을 마련해서 시아버지였던 유다를 통해서 아들을 낳습니다.


계대결혼(levirate marriage)이라 불렸던 이 제도는 역사속에서 종종 관찰되던 풍습이었습니다. 고구려에도 형사취수제라고 불렸던 비슷한 풍습이 있었다고 하지요. 당시에 여성들은 토지나 재산에 대한 소유권을 갖지 못했고, 이는 과부가 된 형수가 재산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보호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또한 만일 형수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게 된다면 가문의 재산이 다른 집으로 넘어가게 되거나, 소유권이 명백하게 규정되지 않고 붕 뜨게 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계대결혼 제도는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는 아들이 없는 미망인을 보호하면서 그 집안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습니다. 현대 문화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형제 된 의무"의 배경은 바로 보호였습니다.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는 이런 점에서 정말 은혜롭습니다. 남편도 잃고 아들도 없이 보호받지 못하는 신세에서 시아버지와 동침함으로 인생역전한 다말이라는 여인이 등장하고(일종의 계대결혼), 또 계대결혼을 통해 자기 인생도 바꾸고 가문도 살린 룻이라는 모압 여인도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구약 율법이 꿈꿨던 약자에 대한 관심과 보호가 성육신이라는 사건을 통해 재조명 된 것이지요. 보호를 받아야 하는 약자가 하나님의 역사에 당당히 동참하고 쓰임받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말씀합니다.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고후 3:6). 로마서 2장에도 말씀합니다. “오직 [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니라 ...” 율법이 쓸 데 없다거나 폐기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조문에 매이지 말고 오히려 그 안에 담긴 정신을 보고 계승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우리는 조문을 뛰어넘어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으로 새 사람이 된 우리는 그러므로 새 언약의 일꾼입니다. 낡은 언약에 매이지 않고, 오히려 그 정신을 꿰뚫어 보고 그것을 삶의 최우선 순위에 두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이는 사람들이 아니라, 살리는 사람들입니다. 판단하거나 정죄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하고 품는 사람들입니다.

[1] "대한민국의 사형제" 위키피디아

  • Writer: 황선웅 (Isaac)
    황선웅 (Isaac)
  • Nov 19, 2019
  • 3 min read

Updated: May 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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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yrdom of the Maccabees, by Ciseri, Antonio.

PC: Britannica entry "Martyr"


본문이 말씀하는 두 증인이 누구인지는 불분명하다. 혹자는 포로기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했던 스룹바벨과 예수아를 떠 올리기도 하고, 6절 말씀을 통해 엘리야와 모세를 떠 올리기도 한다. 이들이 누구를 가리키든지 간에, 그들은 말씀을 맡은 자들이며 (5절,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하나님의 권세를 받아 이 세상에서 권능을 행하는 자들이다 (3, 6절).


여기까지는 좋다. 성도의 고통과 환란을 계속 다뤄 온 계시록의 스토리 라인에서, 두 증인의 등장은 뭔가 짜릿한 역전승을 암시하기까지 한다. 드디어 하나님이 새로 시작하시는 세상의 끝이 오는 것인가? 박해의 시간이 드디어 끝난 것인가? 그러나 엉뚱하게도 (anticlimactic) 두 증인은 무저갱에서 올라온 짐승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7절). 유대 문화가 중요시하는 적절한 장사 예법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채, 두 선지자의 시신은 사람들의 비웃음 거리가 된다.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보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 땅에 사는 자들이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11:7-10).


초대 교회 성도들은 이 말씀을 어떻게 읽고 있었을까? 아마 두 선지자에 자신들의 상황을 대입해 보고 있었을 것이다. 죄로 오염된 땅에서, 성도들은 마치 하나님앞에 선 두 감람나무나 두 촛대와 같은 존재였다 (4절). 그들에게도 주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이 있었고, 공동체 안에서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 그들은 결국 짐승과 같은 로마 제국에 의해 죽임을 당할 것이고, 사람들은 그들의 죽음을 비웃고 조롱할 것이다. 슬프지만, 이것이 성도의 운명이고, 교회의 운명이다. 그러나 교회가 이 상황에서 기억해야 하는 사명이 있으니, 7절이 말씀하는대로, “증언을 마치는 것 (when they have finished their testimony)”이다. 파국적 결말을 맞게된다 할지라도, 끝까지 증언해야 한다.


증언이라는 말의 그리스어 단어는 μαρτυρία (영어 음역: marturia)인데, 이 단어에서 martyrdom (순교)라는 말이 나왔다. 순교자는 martyr 라고 한다. 죽음을 통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것이 순교이다. 사도 바울도 사도행전 20장에,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말했다. 뒤집어 보면 증언이란 끝까지 하는 것,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이라는 말이 된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독립운동에 헌신하신 많은 분들이 생각났다. 우리가 좋은 말로 독립운동이라고 부르지만, 실상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나 마찬가지였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로 현대화 된 군 체계와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 선조들은 독립의 당위성과 끈기 외에는 아무것도 갖지 못한 채 그들과 싸워야 했다.


1932년 1월, 일본이 중국 본토를 침공한다. 중국이 30만 대군으로 결사항전했으나 상하이를 일본에 내 주고 만다. 3개월 뒤인 1932년 4월에 일본이 상하이 점령을 축하하면서 대규모 행사를 갖는데, 이것이 바로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던졌던 홍커우 공원 기념 행사였다. 윤봉길은 이 거사를 통해, 당시 상하이 파견군의 총사령관인 시라카와 요시노리를 폭살하고, 또 다른 몇 명을 제거하고, 일본 군 정치 지도자들에게 큰 상해를 입혔다.


윤봉길의 의거에 깊은 감명과 도전을 받은 인물이 당시 중국의 장제스 총통이었다. 그는 “중국의 100만 대군이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청년 하나가 해냈다”고 격찬했다고 한다. 윤봉길의 의거는 2차 대전 이후 한국이 독립국의 지위를 받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카이로에서 미국, 영국, 중국의 대표가 만나 2차 대전 이후 식민지 문제를 논의했다. 당시 영국은 인도를 미국은 필리핀을 (거의) 식민지배하고 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에 반대했다. 서구 열강은 미영중 삼자 신탁통치를 제안했다. 그러나 장제스 총통이 고집스레 조선의 독립을 주장했고, 이는 윤봉길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줄기찬 항일 운동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윤봉길 의사가 의거 이전에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더 살고 싶은 것이 인정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택해야 할 오직 한 번의 가장 좋은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믿음장인 히브리서 11장은 아벨의 믿음을 이와같이 말씀한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받았으니…” 이 구절 말미에 이렇게 말씀한다.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믿음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며 사는 삶에는 좋은 결과뿐 아니라 오히려 고통이 따를 수도 있다. 로마의 박해 시대는 증언의 결과로 죽음이 주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본문은 분명히 말씀한다. 성도의 사명은 끝까지 증언하는 것이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증언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불분명한 결과 앞에서도 사명을 놓지 않는 것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성도는 죽기까지 믿음의 증언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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