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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riter: 황선웅 (Isaac)
    황선웅 (Isaac)
  • May 17, 2018
  • 1 min read

Updated: Nov 20, 2019

1. 우선 이 농부는 이상한 사람이다. 아까운 씨앗을 돌밭에도 뿌리고 가시 덤불에도 뿌리고, 세상에 길가에도 뿌린다. 농부는 굶어 죽어도 종자를 베고 죽는다고 했다. 좋은 밭을 구입하고, 땅을 갈고, 잘 준비를 하고 뿌려도 시원찮을 판에, 이 농부는 그 아까운 씨앗을 아무데나 마구 뿌린다.


우리 마음에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이 바로 이 농부와 같다. 재리에 대한 유혹이 가득차 있을 때에도, 걱정과 근심이 많아 말씀이 파고들 틈이 없는 그 때에도, 하나님은 부지런히 우리 마음에 말씀의 씨앗을 뿌리신다. 우리 마음의 상태가 어떠하든지,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2. 밭은 대단히 수동적인 이미지이다. 우리가 만약 밭이라면, 내가 자갈밭이 될지 좋은밭이 될지 선택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질 때에 나를 바꿔서 열매맺는 밭이 되게 할 수 있는가?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우리는 스스로를 바꿀 수 있는 깨달음도 능력도 없다.


그래서 이 비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13:10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비유를 풀어달라고 요청한 부분이다. 제자이건 무리들이건 아무도 예수님의 비유를 이해하지 못 했다. 오직 주님께 나아오는 자만이 비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즉 우리의 마음을 좋은 밭으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참 농부이신 주님께 겸손히 나아오는 것이다.


한 가지 더 적용해 보면, 우리 삶 속에 어떤 밭이 될 수 있을지 고를 수 있는 순간들이 있다. 이주를 해야 하거나, 대학교에 진학하거나, 어떤 사람들과 친해질지 결정할 때 등이다. 이러한 선택의 상황에서 우리가 쉽게 놓치거나 경히 여기는 부분이 있는데, 나를 신앙적으로 성장하게 해 줄 수 있는 환경인가를 보는 것이다. 이곳으로 이사를 가면, 혹은 이 학교에 진학을 하면, 이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면, 내가 영적으로 더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는 것이 반드시 우리 결정 과정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 Writer: 황선웅 (Isaac)
    황선웅 (Isaac)
  • May 9, 2018
  • 1 min read

Updated: Nov 20, 2019

주님께서 성찬을 제정하시던 밤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언약이다.”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피가 이 계약의 보증금인 셈이다. 많은 경우 계약을 성사시키는 것은 그 사람의 신용이라기 보다는 보증금이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당사자인 우리들은 신용 불량자였다. 신용 불량자였던 을들과 새 언약을 맺기 위해 갑인 하나님이 친히 피를 흘렸다는 얘기다.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서였다.

PC: Gospel Coalition

따라서 이 계약의 유효성은 을의 계약 이행 여부에 달려있지 않다. 오히려 갑의 신용과 관련이 있다. 갑에게는 이 계약을 계속 유지할 지속적 의지가 있는가? 그렇다. 그가 흘린 피가 그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명이다. 이제 을이 해야 하는 무엇인가? 갑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이런 은혜를 베푼 이유가 무엇인가 생각하고, 새로이 주어진 삶을 갑이 원하는 방법으로 사는 것이다.

  • Writer: 황선웅 (Isaac)
    황선웅 (Isaac)
  • May 1, 2018
  • 1 min read

Updated: Nov 20, 2019

본문 안에 긍휼히 여긴다는 말이 3번 나온다.



1) 영어로는 Compassion 인데, Com- (함께) 이라는 단어와 pati (고통을 당하다) 라는 단어가 합쳐진 합성어이다. The Passion of Christ 라는 영화 제목에서도 보듯이 passion 은 열정이라는 뜻으로 더 널리 쓰이지만, 고난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Compassion (긍휼) 이라는 단어는 함께 고난을 당하다, to suffer with 라는 뜻이다.


2) 히브리어로는 라캄이라는 동사가 사용되었다. 이 단어의 어근은 레켐이라는 단어로 자궁을 뜻하는 말이다. 우리가 잘 아는 호세아의 딸의 이름인 로루하마도 부정어인 로와 루카마 (라캄) 이 합쳐져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다"라는 뜻이다. 예레미야 31:20 절 말씀도 같은 단어를 사용한다.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창자가 들끓으니 내가 반드시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 (라캄)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 내친 김에 한문도 찾아보았는데, 긍휼이란 단어에서 "긍"자는 자랑스러워하다는 뜻이다. 긍지, 자긍심 같은 단어에서 볼 수 있다. 다만 같은 한자가 "관"이라고 읽힐 때가 있는데, 이 때는 앓다라는 뜻이다. "휼"자도 심방변을 포함하여 마음에 일어나는 어떤 감정임을 밝혀준다.


이 세 단어에 공통적으로 들어 있는 것이 고통이라고 말하면 너무한 주장일까.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은 포로기에 있는 이스라엘을 향해 품으신 그저 불쌍한 마음 (옛다 구원받아라) 이런 마음이 아니다. 그 마음 이면에는, 아들을 버려야 했던 아버지가 있다. 이 본문이 고난받는 메시야에 관한 53장 바로 다음에 나오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하나님의 긍휼 너머에는 우리의 연약함과 아픔을 속속들이 이해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눈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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