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마태복음 묵상 챌린지 06, 마 10:34-42
- 황선웅 (Isaac)
- Feb 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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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매우 부담스러운 말씀입니다. 나는 평화를 주러 오지 않았다, 오히려 칼을 주러 왔다. 여기 더해 식구들 간에 불화하게 하기 위해 오셨다고 하십니다. 결론 격으로 가족 누구든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이는 주님께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37절). 흥미로운 것은 예수님께서 한 사람의 관점에서 말씀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35절, “A MAN against his father, A DAUGHTER against her mother…” 그저 일반적인 의미에서 사람들끼리 불화하게 하고 가족 간에 화목을 깨기 위해 오셨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제자의 사명을 받은 그 한 사람의 관점에서 그가 추구하는 최고 가치가 예수님과 복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오신 진정한 목적은 제자 한 사람을 부르기 위해서입니다. 두루뭉술 이것 저것에 다 능하고 어디가나 대접받는 멀티 플레이어 말고, 주님은 그분께 완전히 집중된 사람, 복음에 완전히 미친 사람을 부르고 훈련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페이스북은 프로필 란에 개인의 결혼과 관련된 상태를 표시할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예를 들면, “Single(미혼),” “Engaged(약혼),” “Married(기혼)” 등 인데요, 흥미로운 것 한 가지가 “In an open relationship”이라는 범주입니다. “Open relationship”이라는 말은 교제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애정 관계를 둘에만 국한하지 않기로 서로 합의한 열린 형태의 교제를 의미합니다. 흔히 말하는 오픈 마인드 교제입니다. 여자 친구가 있지만, 나도 그녀도 소개팅을 또 해도 상관없고 누구와 무슨 짓을 해도 서로 터치하지 않는 황당한 형태의 와이드 오픈 마인드 교제가 “open relationship”입니다.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결혼이라는 이미지가 떠올랐습니다. 결혼은 “열린 교제”와는 완전히 다른 "배타적 닫힌 교제"입니다. 그래서 혼인 관계는 한 쪽만의 계약 불이행(불륜 등)으로도 끝나는 깨지기 쉬운 관계입니다. “닫힌 성격”이 파괴되는 순간 결혼의 신성함은 빛을 잃습니다. 전적 헌신이 요구되는 관계가 바로 결혼입니다.
오늘 말씀이 이런 관점에서 읽힙니다. 제자는 “복음과 결혼”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거룩한 신부로 복음을 섬기기 위해 그분과 혼인 관계를 맺었습니다. 배타적이고 거룩한 관계에 들어간 것이지요. 우리가 추구하는 세상의 것들은 반드시 남편이 아닌 옆집 남자로 취급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매력적이고 멋지게 보일지라도, 우리의 마음은 예수님만을 향해야 합니다. 육신의 가족들도, 세상의 어떤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이것을 우리에게 명하고 계십니다.
혼인 관계에서는 배우자가 본인을 대신해 어느 정도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지요? 주님께서는 그 분의 신부로 헌신된 그 사람을 하나님의 임재를 몰고 다니는 사람으로 무겁게 쓰시겠다고 약속해 주십니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40절)” 고린도후서 4장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모두 연약한 질그릇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품고 다니는 사람들이 될 수 있다면…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서 예수님을 생각하게 할 수 있다면, 이것은 필경 우리의 모든 것을 걸만한 일입니다. 혼인잔치의 기쁨을 생각하면서 이 말씀을 읽습니다. 그 기쁨으로 하늘의 일을 이 땅에 이루며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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