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마태복음 묵상 챌린지 07, 마 11:1-19
- 황선웅 (Isaac)
- Feb 1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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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위대한 인물의 후임자가 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후임자가 취할 수 있는 전략은 크게 두 가지인데, 첫째는 전임자를 인정하면서 자기를 그 연속선상에 놓는 일이고, 둘째는 전임자를 부정하면서 자기를 새로운 인물로 부각시키는 것입니다. 자연히 전자는 전임자의 공에 집중할 것이고 후자는 그의 과를 은연 중에 부각시키려 할 것입니다. 인간사에 만연한 태도는 후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허물이나 과실은 언제나 공보다 사람들의 뇌리에 오래 남습니다. 비교보다는 늘 대조가 더 효과적인 말하기 방식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말하자면 세례요한의 후임자 격이었습니다. 요한이 행한 회개의 사역을 토대로 삼아 예수님의 사역이 펼쳐졌습니다. 세례 요한의 첫 마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는 4:17절에 예수님에 의해 똑같이 반복되었습니다. 같은 시대에 회개와 천국에 대한 같은 메시지로 요한의 사역을 계승하신 예수님 입장에서는 분명 요한과 그 분 자신을 대조하는 것이 오히려 쉬운 일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께는 치유와 이적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손 대신 이들은 나음을 입었고, 그 분의 명령에 귀신도 풍랑도 꼼짝 못했습니다. 요한이 저 들판에서 백성들을 속세 바깥으로 나오라고 하는 인물이었다면, 예수님은 세속을 향해 침입해 들어 온 거룩의 상징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요한을 인정하시고 세워주십니다. “...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요한은]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9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11절). 심지어 세례 요한이 메시야의 시기를 선포한 인물, 엘리야 같은 사람이었다고 선언하십니다(14절). 예수님의 것과는 달랐던 그의 사역의 스타일도 공히 인정하십니다(18-19절).

저는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던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손사래를 치며 고사하던 요한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3:15).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이 말씀을 마음에 새깁니다. 다투 듯이 사역하고 다른 이보다 나를 드러내고 싶은 욕심을 내려놓고, 의를 이루는 일을 먼저 생각하기로 다짐합니다. 서로 다른 성격이나 사역의 스타일을 허물로 삼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여러가지 방식으로 여기기로 다짐합니다. 우리 모두의 동역함을 통해 오직 하나님만 영광받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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