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주파괴자로 살기
- 황선웅 (Isaac)
- Jul 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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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는 졸업자의 상당수가 같은 직종에서 일하게 되는 곳으로, 자연히 학교에서의 성적/관계/평판은 현장 목회에 계속 이어진다. 학번제나 기수제의 폐단이 서식하기 쉬운 곳이라는 얘기다. 삼수를 하고 05학번으로 입학한 나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동갑이었던 03학번 선배들과 친구를 먹는다. 동생이 04학번에 먼저 입학한 관계로(“나중된 자가 먼저 된다”), 04 선배들은 입학 첫날부터 와서 “형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감사한 기억들이었다. 03은 나이가 같아서 친구, 04는 동생 친구들이라 친구, 05는 동기들이라 친구 — 나는 학번파괴자였다.

“예수”란 이름은 인간이셨던 주님의 이름이었고(물론 천사의 지시가 있었고 구원자라는 의미가 있지만), “그리스도”는 그분의 역할을 설명하는 말이었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음 받은 분으로 구약의 기름부음 받은 이들이 행하던 왕, 선지자,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신 분이다. 신학에서는 이를 그리스도의 삼중직무론(Christ’s Threefold Office)이라고 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현은 육신의 혈통을 통해 받은 이름과 하늘로부터 받은 그분의 사명이 결합된 말이다. 주님은 언제나 범주파괴자셨다. 참 인간이면서 참 하나님이셨고, 하늘 보좌 출신으로 말 구유에서 나셨고, 십자가는 가장 비참한 죽음이었으나 가장 영광스런 승리이기도 했다. 많은 유대인들이 천대했던 목수 출신의 나사렛 예수는 우주의 그리스도이기도 하셨다. 바울도 로마서 1장에서 이 점을 설명한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로마서 1:2-4).
한인 2세 대학생들과 신앙생활하면서 그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The loss of a home”라는 얘기였다. 우리 공동체의 한 학생은 선교사의 자녀로 남미에서 태어나서 중학교 때까지 그곳에서 자랐다. 그리고 부모님을 따라 한국으로 와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미국 대학으로 유학을 나왔다. 그러면서 자신은 “feeling home-less” 조국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유학 왔다가 이민자가 된 나도 일견 공감한다. 한국에서 나고 27년을 산 토종 한국인은 미국에 와서 10년을 살고 나서 하이브리드가 되었다. 한국은 내 조국이지만 미국은 내 삶이 터전이 있는 두번째 조국이다. 기독교대한감리회라는 모판에서 자란 나지만 연합감리교회라는 나무에 접붙임 받아서 목사로 살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성도인 우리는 바닥에서 살면서 하늘을 보는 사람들 아니던가. 천국의 시민으로 이 땅에 잠시 잠깐 파견나와 있는 주재원 아니던가. 천상병 시인이 노래한대로 “이 세상 소풍” 나온 하늘의 사람들 아닌가.
마땅히 범주파괴자들로 살아야 할 우리들이다. 보물 수저를 물고 있지만 흙수저처럼 살 줄도 알아야하겠고, 현실은 이등병이지만 마음만은 장군같은 마음으로 살 줄도 알아야겠다.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고, 영원히 살 것처럼 지금 잠깐을 살기도 해야하겠다. 이 땅에서 잘 되어야 하겠지만 소망은 하늘에 둔 사람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도 예수님의 친구로 사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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