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7:8-13 묵상] 기도하는 이유
- 황선웅 (Isaac)

- Feb 13
- 2 min read
이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모세가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기도가 얼마나 능력 있었으면 손을 드는 것만으로도 전투의 판도가 달라졌을까. 모세는 대단한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가 부러운 이유 또 한 가지는, 기도의 결과가 바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손을 들고 기도하면 전투가 유리해지고, 손을 내리면 불리해졌다. 기도하고 안 하고의 차이가 삶에 확 나타났던 것이다.

우리 삶은 어떤가. 기도를 열심히 해도 내 삶에 그렇게…? 바뀌는 것이 없어 보인다. 기도를 안 해도… 글쎄… 그닥 달라지는 것 같지 않다. 기도하고 기도하지 않고에 따라 가시적 결과가 분명히 보인다면, 이것보다 더 강력한 도파민 분비 물질이 있을까. 변화가 바로바로 나타나는데, 신이 나서 더 기도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우리의 기도는 그렇지 않다.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기도하든, 하지 않든 삶은 비슷해 보인다. 내 기도는 능력이 없는 걸까 의심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기도하면서, 꼭 기억해야 하는 한 가지가 있다. 기도하는 이유다. 왜 기도하는가. 응답받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다. 삶의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 나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도하는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과 사귀기 위해서다. 하나님과 데이트하기 위해서다.
하나님은 무당이나 램프의 지니가 아니다. 우리의 기도에 꼭 응답하셔야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그대로 들어주셔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분은 우리보다 높으신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왕이시다.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는, 그분을 알기 위해서다. 선하신 그분께 우리를 맡기기 위해서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기도의 목적이다.
물론 이런 기도는 우리를 변화시킨다.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 삶에 끌고 온다. 우리 기도가 강력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이 선하셔서 그렇다. 기도를 통해 우리가 선하신 하나님께 가까워져서, 그분의 능력이 우리 삶에 더욱 온전히 나타날 수 있게 되어서 그런 것이다. 그래서 변화도, 응답도 일어난다. 하나님이 선하셔서 그렇다. 중보기도는 무엇일까. 그 하나님의 선하신 능력을 다른 이들을 위해 비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그들의 삶에도 나타나도록, 더 분명히, 더 완전히 나타나도록 기도하는 것이 중보기도다.
본문으로 돌아가면, 모세는 피곤하여 팔을 도저히 들 수 없을 때까지 손을 들고 기도했다. 더이상 팔을 올릴 수 없을 때까지 기도했다. 전투는 10분 20분 하고 끝나지 않는다. 12절에도 해가 질 때까지 이어졌다고 말씀한다. 일방적으로 이겨서 하루 온종일 걸려 끝났다는 얘기다.
모세는 팔을 도저히 들 수 없을 때까지 팔을 들고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올려드렸다. 하나님은 모세의 그 마음을 아시고,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이기게 하셨다. 우리도 오늘 그렇게 기도해보자. 하나님의 선하심을 온전히 의지하면서 기도하자. 그리고 저들을 향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자. 하나님의 선한 능력이 내 삶에도 또 저들의 삶에도 충분히 나타나도록 기도하자.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