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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씨름하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 <예수의 어려운 말들> 추천의 글

  • Writer: 황선웅 (Isaac)
    황선웅 (Isaac)
  • Apr 12, 2023
  • 3 min read

Updated: Apr 17, 2023

어리바리한 2년차 유학생이었던 저는 학기가 시작하고 나서야 그 수업이 박사과정 학생들이 듣는 요한복음 원전 읽기 심화 과목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한국에서 나고 평생을 자란 저로서는 꽤 벅찬 과정이었습니다. 그리스어로 성경을 몇 절 읽은 뒤 AJ 교수님은(이분은 닥터 레빈이라 불리는 것을 치욕으로 생각하십니다) 이전에 랍비들이 그랬던 것처럼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셨고, 학생들은 대답을 쥐어짜내야 했습니다. 토론의 깊이뿐만 아니라 저들이 사용하는 고급 영어 표현에 완전히 압도되었던 저는, 그나마 자신있던 그리스어 번역마저 헤매고 있었습니다. 우물쭈물 얘기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던 제게 교수님은 이렇게 말을 걸어오셨습니다.


“미스터 황, 해야 할 말이 있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이 듣게 해 줘요.”


저는 머리를 긁적이며 “별로 중요한 얘기는 아니어서요 .....”라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은 “나는 분명 중요한 얘기일 거라고 믿어요”라고 하신 뒤 “바보 같은 질문”이나 “우스꽝스러운 대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덧붙이시며, 배움의 과정에서 질문과 토론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은 이후 제 학업과 목회에 큰 지표가 되었습니다. 전공 서적을 읽고 깨달은 것을 수업 중에 나누는 것과 말씀을 읽고 분별한 것을 설교라는 틀을 통해 나누는 것, 이 두 가지는 전혀 다른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실은 하나였습니다. 두 작업의 중심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말씀이 있음을 붙드는 믿음이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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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질 레빈 교수, 2023년 봄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시간이 허락될 때마다 AJ 교수님의 강연을 들으러 갔습니다. 교수님은 미래의 종교 지도자와 학자를 위한 신학 훈련에 평생을 바치신 분이지만, 평신도를 대상으로 하는 신학 강연에도 깊은 열정을 갖고 계십니다. 제가 참석했던 교수님의 성경 강좌는 대학 캠퍼스에서도 열렸고, 소위 주류 교단이라고 하는 다소 진보적인 교회의 다목적실에서도 열렸고, 보수적인 교회(예컨대, 그리스도의 교회 같은)의 교육관에서도, 가톨릭 교회의 회의실에서도 열렸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곧 알게 되겠지만, AJ 교수님은 유대인입니다. 그리고 신약성서 및 초대 교회사를 전공하고 평생을 후학 양성과 신약 성서학 연구에 힘을 쏟으신 분입니다. 네, 저도 처음 교수님을 뵙고 속으로 같은 질문을 던졌었습니다. ‘유대인이… 신약을 가르친다고?’ 오해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혈통만 유대인일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메시아계 유대인’이 아닌, 보통의 유대인이자 내슈빌의 정통 유대교 회당의 교인이십니다. 유대인 신약학자. 언뜻 보기에는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교수님은 저를 그리스도 예수의 더 좋은 군사가 되게 도와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word)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말씀이신 그리스도(the Word)로 이 세상에 오셨으며, 성령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우리에게 생각나게 하십니다. 처음 성령이 임하신 날로 기억되는 오순절(사도행전 2장)은 히브리어로 ‘샤부오트’(shavuot)인데,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말씀(토라)을 받은 것을 기념하는 유대인의 명절입니다. 즉 말씀은 기독교 신앙의 토대이자 성경을 관통하는 열쇠입니다. 한 가지 더 덧붙여야 할 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 중에 말을 하는 것은 우리 인간뿐이라는 사실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계속해서 말로 세상을 창조해 나가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 가는 세상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신명기 6장에 이 같은 세상을 창조해 나가는 비법이 담겨 있습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부지런히 가르치며… 강론”하는 것입니다(신 6:6-7). 말씀을 곱씹고 배우고 토론하라는 뜻입니다. 질문하고 고민하고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책의 머리말에 저자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과 씨름하는 사람을 뜻한다고 썼습니다. 유대인들은 조상 야곱을 기억하면서 그들이 2천 년 만에 세운 나라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지었습니다. 뼈가 부러지도록 하나님과 싸웠던, 바꿔 말하면 답을 얻을 때까지 끈질기게 질문하고 기도했던 그 한 사람 속에서 자신들의 국가적 정체성을 찾고자 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살아온 역사 자체가 사실은 씨름이었고 질문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면서, 로마의 압제에 신음하면서, 유럽의 게토에서,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에서 그들은 묻고 또 물었습니다. 하늘을 향해 울며 소리치기도 했고, 숨죽인 채 조용히 흐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토론했고, 계속해서 씨름했습니다.


영적 씨름꾼으로 사는 제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의 설교자로서 많은 본문과 씨름했고, 한 사람의 성도로서 여전히 질문하고 고민합니다. 저는 부르심 받는 그날, 천국의 문지기 역할을 하고 있을 사도 베드로를 만나자마자 묻고 싶은 질문들을 가득 장전한 채 살고 있습니다. 아마 평생을 고민해도 답을 다 얻지 못하겠지요. 글쎄요, 답을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 게 아닐까요? 계속해서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가르치며 부지런히 강론하는 것 말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내 삶에 또 내가 속한 공동체에 하나님 나라를 창조하도록 하는 것,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주인되시는 그 나라가 내 안에 먼저 임하게 하는 것 말입니다.


근성을 가진 모든 영적 씨름꾼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그냥 믿으면 된다.” 아니요, 저는 그렇게 믿고 싶지 않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그저 외우면 끝나는 수학 공식처럼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선물로 주신 말씀입니다. 은혜로 주신 말씀입니다. 지금은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선물을 주신 그분의 선하심을 믿고 한 걸음 한 걸음 주님을 더 알아 가고 싶습니다. 이 책을 통해 여러분께서 찾고 계신 답에 한 뼘 더 가까이 나아가시길 소망합니다. 답이 아니라 더 좋은 질문을 손에 넣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두 가지는 장담합니다. 이 책은 여러분의 씨름판에 좋은 도구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말씀을 더 사모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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