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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riter: 황선웅 (Isaac)
    황선웅 (Isaac)
  • Mar 27, 2024
  • 1 min read

돌아오는 수요일은 사순절을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입니다. 음… 얘기해야 할 것이 많네요. 먼저 사순절(四旬節, Lent)은 문자 그대로 40이라는 뜻입니다. 부활절 이전의 40일을 가리키며, 주일은 포함하지 않습니다. 여섯 번의 주일을 포함하면 실제로는 46일간의 기간입니다(주일이 빠진 이유는 매 주일이 작은 부활절이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는 이 기간 동안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기억하며 경건과 절제의 기간으로 지켰습니다. 사순절은 특별히 부활절에 행했던 세례를 준비하는 기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금식과 기도, 말씀 묵상과 봉사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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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의 첫 날이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이라고 불리게 된 이유는 고대의 관습 때문입니다. 성경에도 슬픔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옷을 찢고 머리에 재를 덮어쓰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옵니다. 이런 관습이 예배의 요소로 발전해서 재를 물에 개어 이마에 바르는 의식이 되었습니다. 집례자는 참가자들의 이마에 잿물로 십자가를 그려주면서 “Remember you are dust, and to dust you shall return.”이라고 말해 줍니다. 죄 짓고 동산에서 쫓겨나는 아담에게 하나님이 주셨던 말씀입니다(창 3:19). 


아담의 이름은 히브리어 아다마(אדמה)에서 왔습니다. 흙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아담의 영어 이름은 사실 Clay 라고 해야 맞습니다(쿨럭 쿨럭). 하나님의 준엄한 말씀이지요. ‘너는 내가 준 생명의 숨결 없이는 흙에 불과하단다.’ 죄를 짓고 하나님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던 인간에게 주신 경고의 리마인더였습니다. 사순절 46일은 우리가 흙에 불과하다는 것을 고백하고 다시 회개의 자리로 돌아가는 기간입니다. 단지 흙먼지에 불과한 우리를 위해 주님은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흘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순절은 슬픔의 절기이면서 감사의 절기입니다. 고난에 동참하는 절기이면서 기쁨을 회복하는 기간입니다.

  • Writer: 황선웅 (Isaac)
    황선웅 (Isaac)
  • Mar 27, 2024
  • 1 min read

경제는 계속 성장하고 있고, 기술도 끊임없이 진보하고 있습니다. 50년 전과 비교해도, 우리의 삶은 놀라울 정도로 빨라지고, 편해지고, 쉬워졌습니다. 분명 행복감도 증가해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사회는 발전했지만 오히려 5년 전, 10년 전이 더 행복했던 것처럼 느껴집니다.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이라는 미래학자는 공감의 시대, The Empathic Civilization: The Race to Global Consciousness in a World in Crisis에서 다음과 같은 행복 공식을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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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양은 자본을 욕망으로 나눈 값입니다. 왜 사회가 발전하고 경제가 아무리 좋아져도 우리의 행복감은 증가하지 않을까요? 소유하는 것(자본)이 늘어나는만큼, 아니 그보다 더 빠르게 우리의 욕망이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즉 행복하기 위해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은 소유를 더 늘리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절제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미국의 원조부자로 꼽히는 록펠러에게 어떤 기자가 물었습니다. “How much money is enough?” 어리석은 질문에 록펠러가 현명한 답을 남겼습니다. “Just a little bit more.” 소유를 늘리기 위한 계획보다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은 어쩌면 욕망을 통제하고 줄이기 위한 절제의 훈련인지도 모릅니다. 네, 저도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차라리 돈 몇 푼을 더 버는 게 쉽지 않나?’ 


그래서인지 하나님은 사도바울의 끈질긴 기도를 거절하시면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고 하십니다. “받은 복을 세어보라”는 말씀도 주십니다. 앞으로 더 받을 것만 바라보면서 지금 가진 것에 불평하지 말고, 이미 우리에게 있는 것을 세어보고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절제를 통해 기쁨을 누리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 Writer: 황선웅 (Isaac)
    황선웅 (Isaac)
  • Mar 2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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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사본(Codex Vaticanus)은 현존하는 신약성경 사본 중 가장 권위있는 사본 중 하나입니다. 4세기의 것으로 추정되고 신약성경 거의 대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바티칸 사본의 히브리서 1:3 옆에는 필경사(scribe)가 추가한 것으로 보이는 경고문이 달려 있습니다. 


ἀμαθέστατε καὶ κακέ, ἄφες τὸν παλαιόν, μὴ μεταποίει

Fool and knave, leave the old reading and do not change it! 

멍청하고 나쁜놈아, 성경 본문을 바꾸지 말고 그대로 두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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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술이 나오기 전까지 성경은 필경사들이 손으로 옮겨 적어 만들었습니다. 필경사들의 임무는 원본(original copy)과 똑같은 사본(manuscript)을 만드는 것이었지만, 어떤 필경사들은 창의적으로 일에 접근했던 것 같습니다. 혹시 사본을 만들다가 이야기 전개에 방해가 되는 단어가 나오면 일부러 빠트리기도 하고, 혹은 이야기 진행을 더 매끄럽게 할 수 있다면 한 문장을 추가하기도 했습니다. 바티칸 사본에 달린 무서운 경고문이 나오게 된 배경입니다. 


말씀을 바꾸려는 시도는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회개라는 단어 혹은 죄라는 단어가 강단에서 실종되었습니다(저도 책임감을 느낍니다). 복이나 축복이라는 단어는 원래보다 남발되고 있습니다. 순교나 선교, 헌신도 찾아보기 힘든게 사실이지요. 사랑이란 말은 하나님께 받는 것으로만 배우지 서로 실천해야 하는 것 또 교회 밖으로 흘려보내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잘 안 들리는 것 같습니다. 


지난주 “내 말을 듣고 #그대로 하는 사람은 그 집을 바위 위에 지은 사람과 같다”라는 말씀을 전하면서 저도 마음이 찔렸습니다. 실제로 #그대로 행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은가 하는 질문 + 자기합리화도 마음에 있었고요. 그래선지 주님은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지 말씀하시면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자기 사랑을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말씀에 나온 여러가지를 다 그대로 세세하게 지킬 수는 없을지라도 하나님과 이웃,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향으로 걷기를 힘쓴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제 삶에 살아 숨쉬는 인생, 그래서 바위 위에 지어진 흔들리지 않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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