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1장 묵상, 바로의 꿈
- 황선웅 (Isaac)

- Nov 2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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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Nov 20, 2019
Bad money drives out good.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는 경제학의 개념이 있다. 동일한 액면 가치를 지닌 두 개의 화폐가 유통된다고 하자. 첫번째 돈은 금 반 돈을 녹여 만든 <10만원>이라는 동전이고, 두번째 돈은 같은 <10만원> 동전인데, 속은 철이고 겉에 금 도금을 했다. 시장에 이 두 동전이 같은 액면 가치 (10만원) 로 유통된다면, 자연히 사람들은 순금 화폐를 집에 쌓아두고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는 무조건 순금 동전이 아닌 도금 동전을 사용할 것이다. 좋은 돈은 씨가 마르고, 나쁜 돈만 돌아다닐 것이다. 이것이 나쁜 돈 (도금 화폐) 이 좋은 돈 (순금 화폐) 을 시장에서 몰아내는 원리이다.
오늘 우리 시대의 기독교에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 시대는 나쁜 (일부보다 더 많은 수의) 대형 교회들이 좋은 교회 (보통 중소형) 들을 구축하는 시대이다. 나쁜 정치 목사들이 좋은 (조용하고 성실하게 자기 목회를 하는) 목회자들을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세인들의 눈에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좋은 기독인들 보다는, 자기가 잘되는 일에만 혈안이 된 이기적 예수쟁이들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라, 그저 하나의 이익 집단, 사회에 아무 도움도 필요도 없는 그런 쓸모없는 곳으로 교회가 전락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창세기 41장에 나오는 바로의 꿈을 떠 올려본다. 살진 암소도 일곱 마리, 앙상하게 뼈만 남은 암소도 일곱 마리였다. 그러나 바로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살진 소들을 먹어치운 뒤에도 여전히 말라 비틀어진 암소 일곱 마리뿐이었다. 무성하고 알찬 일곱 이삭도, 쭉정이가 된 마른 이삭 일곱에게 먹혀서 없어졌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이대로 끝나지 않았다. 희망을 집어 삼켜버린 절망으로 이 꿈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꿈을 꾸는 한 사람을 역사의 전면에 등장시켰다.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현재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절망은 단지 새로운 기독교를 향한 전환점일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분의 교회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교회안에 여전히 그 분의 빛이 있다.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새로운 비전은 여전히 교회안에 있다. 새로운 미래를 향하여, 거룩한 하나의 공 교회를 위해 준비된 꿈쟁이들이 일어날 것이다. 꿈꾸는 자들이 속히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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