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의 아량
- 황선웅 (Isaac)
- Nov 17, 2020
- 3 min read
Updated: Dec 7, 2020
전 세계의 UFC 팬들은 며칠 전 대단히 충격적인 뉴스를 접했다. 라이트급 챔피언이었던 하빕 누르마고메도프가 돌연 은퇴를 선언한 것이다. 29전 29승의 통산 기록을 가진 그는 (맞다… 단 한 번도 지지 않았다) 역대 라이트급 챔피언 중 타이틀 벨트를 가장 오래 보유했던 선수였다. 특히 코너 맥그리거를 상대로 했던 1차 타이틀 방어전은 불후의 명경기로 남아있다.
지난 10월 24일 하빕은 저스틴 게이치를 상대로 3차 타이틀 방어전을 가졌다. 줄곧 언더독으로 평가되었던 게이치는 세간의 평가를 비웃기라도 하듯 하빕에게 어떤 그라운드 기술을 당해도 절대로 탭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탭은 일종의 항복 선언으로 보통 링 바닥 또는 상대의 팔 등을 쳐서 의사를 표시한다. 한편 하빕은 그라운딩(잡고 꺾고 누르고)에 매우 능한 선수로, 서서 싸우다가 펀치나 킥으로 끝내기보다는 조르고 꺾어서 탭으로 KO시키는 경우가 더 많은 선수다. 게이치가 그라운딩 중 절대로 탭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은 하빕을 향한 작은 도발이었던 셈이다.

예상대로 하빕은 시종일관 경기를 리드했고 2라운드에 트라이앵글 초크로 KO승을 거두며 3차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게이치는 파이터답게 탭하지 않고 하빕의 초크에 기절해 버렸다. 경기 이후 하빕의 측근인 한 전문가의 인터뷰 중 놀라운 대목이 있었다. 하빕이 경기를 끝낸 장면은 보통 암바(팔 꺾기)라는 기술이 나와야 맞는 장면이었다. 암바로 전환해 경기를 바로 끝낼 수 있는 장면에서, 그가 돌연 쉬운 암바가 아닌 복잡한 트라이앵글 초크를 일부러 썼다고 그에게 직접 들었다는 것이었다. 암바라는 기술을 당했을 때 탭하지 않고 버티면 팔이 부러질 수 있다고 한다. 한 경기를 잃는 것은 물론 선수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하빕은 게이치가 절대로 탭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을 익히 들었고, 관중석에 앉은 게이치의 부모님 앞에서 그의 팔을 부러뜨리기보다는 트라이앵글 초크로 잠시 재우는 것을 택했다는 것이다 [1]. 이기는 데만 급급한 것이 아니라 상대를 배려하면서 이기는 것까지 생각했던, 과연 챔피언다운 여유였다.
글쓰는 의사라 불리는 남궁인씨의 글에서 이런 얘기를 본 적이 있다 [2]. 기내흡연은 이미 금지된 지 20년이 넘었다. 그러나 여전히 대다수의 비행기들이 여전히 화장실에 재떨이를 탑재한 채 출고된다. 범법자들을 위한 황당한 배려에 관해 그가 찾아낸 답은 놀라웠다. 물론 불법이지만 어떤 이들은 꼭 흡연을 하고야 만다는 것. 아무리 규정에 대해 홍보하고 처벌 수위를 높일지라도, 매년 일정 수는 기내 흡연으로 적발된다고 한다. 만약 재떨이가 없다면, 어차피 존재할 그들은 기내 화장실 벽이나 휴지통 같은 곳에 아무렇게나 재를 버릴 것이고 이는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남궁인은 이렇게 덧붙였다. “그렇게 비행기의 재떨이는 나같은 범인의 생각보다 더 유별나고 유난한 배려에서 태동한 존재였다. 그래서 나는 자전거도, 자동차도 아닌, 비행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크기만큼의 거대한 아량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건널 정도의 너른 존재를 창조하려면, 누군가를 고려하는 마음도 그 정도의 너비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하고.”
우리는 종종 이 세상의 악에 대해 분노하고 하나님께 항의한다. 선하신 창조세계에 들어온 악과 다른 이들의 생명조차 종잇장처럼 여기는 그들 앞에 하나님의 정의는 어디에 있는가 반문하기도 한다. 그들의 악행을 천인공노할 일이라 생각하며 우리의 죄악을 돌아보거나 자비를 생각하기는 커녕 그들은 인권조차 박탈당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만일, 그들은 단지 비행기보다 더 큰 우주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의 배려의 깊이를 드러내는 도구라고 한다면. 잘못된 사용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들에게 허락하신 자유를 존중하시는 하나님의 아량이라면 어떨까.
우리가 경험하는 악은 어떤 것이든 반드시 하나님의 통제 하에 있다. 주 여호와 하나님은 그 어떤 악보다 크고 강하시다. 그리고 성경은 마지막 때에 이뤄질 온전한 질서와 선의 회복에 대해 약속하신다. 또한 이 약속은 우리에게 세상을 향해 챔피언같은 아량을 품으라 도전하신다. 우리가 이길 것이다. 그러나 이기는 것에만 만족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 이길 것인가. 어떻게 그들을 도와 그들 안의 있는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 깨닫도록 도와줄 것인가. 그들의 삶을 향해 품으신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발견하도록 또 그를 위해 살도록 도울 것인가. 처벌을 넘어서 이것이 우리 믿는 이들의 질문이 되어야 한다.
[1] ESPN MMA, "Daniel Cormier: Khabib Nurmagomedov used triangle choke to not injure Justin Gaethje" https://www.espn.com/mma/ufc/story/_/id/30198787/khabib-nurmagomedov-used-triangle-choke-not-injure-justin-gaethje
[2] 남궁인, "여기 재떨이는 왜 있지?"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803041957504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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